#7 인생의 빛과 그림자를 담은 클래식
#7 인생의 빛과 그림자를 담은 클래식
인생의 명암이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처럼 예술을 꽃 피우며 살았을까. 많은 이에게 선망의 대상인 누군가의 삶에도 굴곡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빛과 그림자를 오가며 탄생한 그의 명곡은 찬란한 작품성 뿐만 아니라, 그의 음악 인생을 담아 더욱 가치가 있다.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0번 Mozart, Piano Concerto No.20 in D minor, K.466
오랜 직장생활을 마치고 은퇴하게 되면 노년의 삶에 대한 고민이 많아진다. 다행히 젊을 때부터 즐겼던 음악 감상과 오디오 취미생활에 덕분에 지루할 새 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다. 혼자만의 취미에 질릴 때면 친구들과 당구를 치기도 하는데, 오랜만에 함께 하는 놀이는 재미와 묘한 흥분도 느끼게 한다. 모차르트도 당구를 굉장히 즐겼다고 전해진다. 집에 당구대를 설치해 놓을 정도로 좋아했고. 그의 생애를 그린 영화 ‘아마데우스’에서는 당구대 위에서 공을 굴리면서 작곡하는 장면도 나온다. 하지만, 그리 능숙하진 않았던 듯하다. 내기 당구와 카드 도박으로 많은 돈을 잃어 빚에 쪼들렸고, 그 빚을 갚기 위해 무리하게 작곡한 것이 건강 악화와 관련 있으리라 추측하는 학자들도 있다.
아버지 레오폴드는 6살의 모차르트를 데리고 연주 여행을 시작했다. 10살까지 4년간 이탈리아를 제외한 유럽의 전역을 여행했고, 13세부터 17세까지 이탈리아를 세 차례나 방문해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귀국 후 고향 잘츠부르크 궁정 음악가의 자리를 얻었으나, 신동으로 유럽 전역에 이름을 떨쳤던 모차르트에게는 만족스러운 자리가 아니었기에 21세 때인 1777년에 모친을 대동하고 만하임, 파리 등 대도시로 구직 여행을 떠났다. 하지만 이미 신동의 신비로움이 사라진 모차르트에게 제안된 일자리는 기껏해야 베르사유궁의 오르가니스트 자리였다. 실망한 채 고향으로 돌아온 후 잘츠부르크 대주교 궁정 악장 자리를 얻어 신분 상승이 되었지만, 그의 꿈은 여전히 대도시로 향해 있었다. 당시의 잘츠부르크는 그의 능력을 펼치기엔 너무 좁은 변방의 소도시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잘츠부르크를 지배하고 있던 대주교로부터 하인 취급을 당하고 있다는 불만이 겹쳐 결국 1781년(25세)에 빈으로 떠났고, 이후 35세로 세상을 등지기까지 빈에서 프리랜서 작곡가로서 화려하면서도 불안정한 삶을 살았다.
계몽주의 군주 요제프 2세가 통치하고 있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수도인 빈에서도 모차르트는 안정된 직장을 구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1782년(26세)에 요제프 2세가 의뢰한 오페라 ‘후궁으로부터의 도피’가 큰 성공을 거두면서 작곡가로서의 위상은 더욱 높아졌고, 점차 작곡 의뢰, 귀족 자제들 교육, 연주 활동 등으로 상당한 수입을 벌어들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해에 콘스탄체 베버와 결혼해 안정된 가정도 꾸렸다. 프리랜서 작곡가로서의 주된 수입원은 오페라 공연과 당시 빈 귀족들에게 가장 인기가 있었던 악기인 피아노와 관련된 것이었다. 비단 작곡가로서만이 아니라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인정받고 있었던 모차르트는 자신이 작곡한 피아노 협주곡이나 소나타 등을 직접 연주하는 프로그램을 기획해 인기를 끌었고 상당한 수입을 얻기도 했다.
오스트리아 빈의 모차르트 조각상
빈에서의 모차르트의 마지막 10년의 삶은 경이롭다. 짧은 기간에 수많은 명곡을 남겼기 때문만은 아니다. 많은 수입을 얻었지만, 경제적인 관념은 형편없었던 그는 사치스러운 생활과 내기 당구, 카드 도박 등으로 항상 수입보다 지출이 많았다. 부유한 집안 출신의 아내 콘스탄체 또한 화려한 생활을 즐겼기 때문에 점차 빚이 늘어났고, 그 빚을 갚기 위해 모차르트는 엄청난 속도로 작곡을 해야만 했다. 특히 당시 빈 청중에게 가장 인기가 높아 비교적 많은 수입을 얻을 수 있었던 피아노 협주곡은 1784년(28세)부터 1786년(30세)까지 3년 동안 무려 12곡을 작곡하고 직접 연주를 했다. 베토벤이 남긴 피아노 협주곡은 5곡, 쇼팽과 브람스는 불과 2곡만을 남겼다. 이에 비하면 모차르트의 작곡 속도는 경이로운 수준이다. 그렇다고 작품들의 수준이 낮은 것도 아니다. 이 12곡뿐 아니라 그가 남긴 27곡의 피아노 협주곡 중 10살 무렵에 작곡한 4곡을 제외하고는 모두 걸작으로 인정받는 명곡들이다. 이 중에서 가장 뛰어난 혹은 가장 좋아하는 작품 한 곡만 골라야 한다면 매우 난처하다.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많은 음악 애호가에게도 쉽지 않은 선택일 것 같다. 특히 1785년(29세)에 작곡한 20번부터 세상을 등진 1791년(35세)에 작곡한 27번까지 마지막 8곡은 우열을 가리기 어렵지만, 꼭 한 곡만을 골라야 한다면 베토벤이 유독 좋아해 따로 카덴차(협주곡에서 악장이 끝나기 직전에 독주자의 기교를 보여주기 위해 화려하고 자유롭게 반주 없이 연주하는 부분)를 작곡했다는 20번을 꼽을 것 같다.
경제적 상황이 심각해지기 시작한 1985년에 모차르트는 3곡의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했다. 그중 가장 먼저 작곡한 곡이 제20번이다. 이전의 19곡 협주곡은 모두 장조(major)의 작품들인 데 반해 20번은 단조(B minor)의 조성이다. 어둡고 비극적인 인상을 주는 단조 조성의 협주곡은 피아노로 밝고 화려한 기교를 과시하는 것을 즐겼던 당시 청중들의 취향에 맞지 않았기 때문에 매우 파격적인 작품으로 볼 수 있다. 모차르트가 왜 단조 조성의 협주곡을 구상했는지는 기록이 없어 알 수가 없다. 다만 최고의 음악가로 추대받고 화려한 생활을 즐겼지만, 그 속에 숨겨진 슬픔과 고독을 한 번쯤 음악에 담고 싶었던 건 아닐지 추측해 보는 정도이다.
(1악장)
현악기들이 어둡고 다소 심각한 분위기의 주제 화음을 연주하고, 이어 나타나는 피아노의 독주 선율도 슬픔을 억누르는 듯한 표정으로 여리고 수줍게 표현되지만, 점차 활기를 찾아간다. 슬픔이 가득 배인 선율 속에서도 이따금 화려함이 엿보이기도 한다. 후반부 2분가량의 카덴차 역시 전반적인 분위기는 어두운 편이나 끝부분에서는 피아노의 화려한 기교를 맘껏 뽐내며, 이에 화답하는 관현악도 잠시 밝은 모습을 보여주기는 하나 이내 어두운 단조의 화음으로 조용히 끝을 맺는다.
(2악장)
단순해 보이는 선율의 피아노 독주로 시작하는 2악장은 지극히 아름답고 서정적인 분위기의 로망스 악장이다. 사랑의 감정을 가득 담은 듯 밝고 부드럽다. 중간에 잠시 격정적인 분위기로 바뀌어 피아노와 관현악이 서로 경쟁하듯 하며 긴장감을 불러일으키지만, 다시금 첫 부분의 로망스 분위기로 돌아와 밝고 서정적으로 끝난다.
(3악장)
피아노와 관현악이 빠른 속도의 화려한 선율들을 번갈아 연주하면서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전반적으로 밝고 경쾌한 분위기의 악장이나 이따금 D 단조 조성이 가져다주는 어둡고 슬픈 표정이 읽히기도 한다. 30초가량의 짧은 카덴차가 아쉬움을 주지만, D 장조로 바뀐 화려하고 당당한 코다(coda, 종결부)는 충분히 그 아쉬움을 달래 준다.
이 곡은 그리 어려울 것 같지 않은 피아노 협주곡이지만 적절한 터치와 속도감으로 밝고 아름다운 선율 속에 내재된 고독과 슬픔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해 낼 수 있는 연주가는 많지 않다. 1960년 벨기에에서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등진 노년의 클라라 하스킬Clara Haskil 여사가 같은 해에 이고르 마르케비치Igor Markevitch 지휘로 녹음한 20번 협주곡은 모차르트의 단순한 선율 속에 감춰진 슬픔을 지극히 아름답게 그려낸 명연주이다. 60년이 넘은 녹음이지만 음질도 아주 좋다. 실황 영상으로는 일본 출신의 모차르트 스페셜리스트 미츠코 우치다Mitsuko Uchida의 연주를 추천하고 싶다. 다소 격한 감정 표현이 어색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연주는 아주 좋다.
♪ 음악 들어보기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0번 Mozart, Piano Concerto No.20 in D minor, K.466
Clara Haskil / Igor Markevitch, Orchestre Lamoureux (1960)
https://www.youtube.com/watch?
v=eF74h_WhLiI
Mitsuko Uchida, piano & conduct
https://www.youtube.com/watch?
v=yM8CFR01Kw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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